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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는 하나의 가족이다

[삶-대담] 효동어린이집 배영희 원장 (교육학 박사)

기사입력 2025-10-02 16: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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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태종대의 물결을 바라보며 자란 외동딸 배영희. 그는 김천에서 장애·비장애의 경계를 넘어 아이들이 스스로 설 수 있는 힘을 가르치는 교육자가 되었다. 한 사람의 삶이 질문에서 소명으로, 그리고 실천으로 이어진 여정을 따라가 본다.


 




1. 바다를 품은 소녀의 시작

 

부산 태종대, 푸른 물결과 맞닿아 있던 동삼동에서 한 소녀가 세상에 첫 발을 내디뎠다. 그 이름, 배영희.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난 그녀는 늘 혼자 놀았다. 친구 집마다 북적이는 형제자매의 웃음소리가 부러웠지만, 그 외로움은 곧 친구들과 세상을 더 가깝게 품고 싶은 마음으로 바뀌었다. 어린 영희는 동네 아이들에게 과자를 나눠주며 함께 놀았고, 어린 동생들을 보살피는 데서 유난한 기쁨을 느꼈다.




 


 

그녀의 창문 너머엔 언제나 바다가 있었다. 집에서도, 학교에서도 끝없이 펼쳐진 푸른 수평선이 보였다.

부산 사람들은 모두 바다만 보고 사는 줄 알았죠.”

그녀의 기억 속 유년의 풍경은 늘 바람과 파도소리로 가득 차 있다.

 

 

2. 세상을 묻던 사춘기- 스님의 길을 꿈꾸다


 



청소년기의 영희는 세상을 향한 호기심만큼이나 삶의 근원을 깊이 성찰하던 아이였다. 죽음과 삶, 인간 존재의 의미를 궁금해 하며, 어느 날은 스님이 되겠다는 결심까지 품었다. 고등학교 졸업 무렵, 출가를 준비하며 작은 보따리를 쌌으나, 외동딸을 절로 보낼 수 없다는 어머니의 단호한 질책 앞에 그 길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그 시절, 부산 당감동엔 화장장이 있었다. 여고생 영희는 교복을 입은 채 화장장에서 올라오는 연기를 하염없이 바라보았다. ‘태어나고 죽는다는 건 무엇일까?’그 물음은 아직도 그녀 안에서 잔잔히 파도친다. 비록 출가하지 못했지만, 삶을 더 깊이 바라보는 눈은 그때 이미 열리고 있었다.

 

 

3. 아이들과의 운명적 만남- 동국대 유아교육학과


 



출가의 길 대신 그녀가 택한 길은 교육자였다. 불교적 가치가 깃든 동국대학교 유아교육학과에 진학해 법당에서 스님들과 함께 공부했고, 동양철학과 불교사상을 곱씹으며 아이들의 마음을 이해하는 법을 배웠다.

 

졸업 후 서울에서 유치원 교사로 아이들을 가르치던 어느 날, 그녀의 인생은 또 한 번 커다란 전환점을 맞았다.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단 둘이 살았는데 어머니가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은 것이다. 눈앞이 캄캄했다. 이때, 청주에서 주지로 있던 사촌오빠 스님이 네가 직접 유치원을 경영해보지 않겠느냐고 권유했다. 29살의 젊은 나이에 부산의 전 재산인 집 두 채를 팔아 청주 봉명동에 유치원을 샀다. 당시 원아 300, 지역에서 손꼽히는 명문 유치원으로 키워낸 20년 동안을 그녀는 유치원과 결혼한 시간이라고 부른다.

 

 

4. 사랑과 김천, 새로운 길


 


 

유치원 원장으로 바쁘게 살던 그녀에게 김천대학교 유아교육학과에서 강의 요청이 들어왔다. 현장의 이야기를 전하기 위해 강단에 선 그녀는 그곳에서 한 사람을 만난다. 물리치료학과 교수였던 지금의 남편이다. 운명처럼 다가온 사랑은 42세의 그녀를 김천으로 이끌었다.

 

결혼 후 청주의 유치원을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가족을 선택했다. 그렇게 김천에 정착한 그녀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사회복지법인 효동복지재단을 설립하고, 장애아동을 위한 효동어린이집을 세운 것이다.




 

5. 두려움 속의 첫걸음- 효동어린이집의 탄생


 



효동어린이집은 단순한 보육 시설이 아니다. 장애아동이 교육과 치료를 함께 받을 수 있는 전문 시설이다. 김천에는 당시 특수교육 시설이 전무했고, 부모들은 인근 도시로 아이를 보내야 했다. 물리치료 전문가였던 남편의 제안이 계기가 됐지만, 시작은 두려움 그 자체였다.

 

처음 3년은 울면서 버텼어요. 낯선 지역에서 장애아동 교육을 한다는 건 결코 쉽지 않았죠. 주위의 색안경을 견뎌내며 스스로 길을 찾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세월은 진심을 증명했다. 어느덧 21년이 지난 지금, 그녀는 그 모든 시간이 의미 있었음을 안다. “이 일을 선택한 건 내 인생에서 가장 잘한 일이에요

 

 

6. 장애아와 부모에게 보내는 따뜻한 호소


 



배영희 원장은 늘 말한다.

 

장애든 비장애든, 아이는 한 사람의 인간입니다. 아이들이 세상을 스스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중요해요. 부모의 자존심보다 아이의 인생을 먼저 생각해 주세요

 

그녀는 장애아 부모의 현실을 잘 안다. 우울감과 사회적 편견, 끝없는 양육 부담하지만 예전보다 사회는 많이 달라졌다고 말한다.

지금은 국가 지원도 늘었고 사회의 시선도 천천히 변하고 있어요. 희망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7. 성장하는 현장- 전문가 집단과 맞춤 교육


 



효동어린이집은 보통 어린이집이 아니다. 숲 놀이터와 친환경 교실, 편백나무 유희실이 있는 자연 속의 배움터이자, 언어·작업·물리·놀이치료사 등 40여 명의 전문가가 함께하는 맞춤형 교육의 장이다.

 

아동별 발달 평가를 기반으로 한 개별화 교육 프로그램(IEP), 발달 수준에 맞춘 맞춤 치료, 방과후 프로그램을 통해 아이들이 독립적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효동어린이집은 한국보육진흥원 우수 보육서비스 기관(2022) 경상북도 아토피·천식 안심 어린이집 환경부 인증 어린이 활동 환경 안심 공간 등 수많은 공인을 받았다.

 

 

8. 감사와 사랑을 전하는 문화- 스승의 날과 크리스마스 음악회


 




효동어린이집은 아이와 교사 모두가 존중받는 문화를 만든다. 매년 스승의 날이면 학부모와 후원자들이 준비한 작은 선물과 따뜻한 감사의 마음이 교사들에게 전해진다. 빗방울이 흩날리던 올해 스승의 날도, 경북을 대표하는 소프라노 김채은의 노래가 천막을 채웠고, 선생님들은 서로의 손을 잡고 지난 시간을 위로하며 눈시울을 적셨다.

 

또한 효동 크리스마스 음악회는 아이, 부모, 시민이 하나가 되는 축제다. 아이들은 무대 위에서 마음껏 재능을 발휘하고, 부모들은 사랑과 자존감을 되새긴다. 음악이 흐르는 그 순간, 모두는 하나의 가족이 된다.

 

 

9. 글로 피어난 삶- 내가 꽃인 줄 몰랐습니다


 



배 원장은 언론에 썼던 80편의 글 중 50편을 모아 내가 꽃인 줄 몰랐습니다를 출간했다. 유년의 외로움과 교육자로서의 길, 장애아동과 부모를 향한 애정이 잔잔하게 담긴 에세이다.

 

책은 출간 직후 교보문고와 예스24에서 주간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서울국제도서전에 초청되어 수많은 독자에게 감동을 전했다.

아름답게 포장하지 않았어요. 제 상처와 진짜 마음을 있는 그대로 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많은 분들이 공감해 주셨어요

 

 

10. 오늘을 사는 철학- 무소유와 지금 이 순간


 



젊은 시절, 데일 카네기의 인간관계론을 탐독했던 그녀는 이제 법정 스님의 무소유에서 삶의 지혜를 얻는다.

무소유는 아무것도 갖지 않는 게 아니라 필요 없는 것을 갖지 않는 거예요. 어제는 지나간 오늘이고 내일은 다가올 오늘이죠. 인생은 결국 오늘뿐이에요

 

그녀는 하루하루를 가장 기쁘고 충만하게 살기 위해 노력한다. 후회 없이, 미련 없이, 오늘이라는 선물을 온전히 살아내는 것. 그것이 그녀의 삶을 빛나게 한다.

 

 

11. 앞으로의 길


 



아이들과 함께할 수 있는 날까지 이 일을 하고 싶어요. 언젠가는 또 다른 나만의 시간을 가지며 두 번째 책도 쓰고 싶습니다

 

교육자로, 어머니로, 한 인간으로 살아온 배영희 원장은 여전히 성장 중이다. 그녀가 피워낸 꽃은 아이들의 웃음 속에서, 그리고 한 권의 책과 한 그루의 나무처럼 자라나는 교육의 숲속에서 여전히 향기를 내고 있다.

 

 

읽는 이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


 




한 여성이 외로운 소녀에서 수많은 아이들의 어머니가 되기까지 걸어온 길을 따라가 보았다. 파도와 함께 시작된 삶, 교육자로서의 헌신, 장애아동을 향한 깊은 사랑, 그리고 오늘을 온전히 살아내는 철학까지... 그녀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이렇게 속삭인다.

 

오늘 하루를 사랑하라. 그리고 누군가의 세상을 조금 더 따뜻하게 만들어주라

 

 












 

 

김대중 기자 (koreai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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