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천시체육회 최한동 회장의 삶은 늘 몸이 먼저 반응해 온 시간의 기록이다. 그는 말로 앞서기보다 행동으로 먼저 길을 열었고, 설명으로 자신을 지키기보다 책임을 짊어지는 쪽을 선택해 왔다. 그래서 그의 체육은 성적과 기록을 넘어 “사람을 어떻게 키울 것인가”라는 질문으로 귀결된다.
그에게 체육은 기술이 아니라 사람을 키우는 과정이며, 사람의 성장이 곧 공동체의 성장이라는 믿음으로 이어진다. 결국 그는 체육을 통해 개인의 가능성을 키우고, 그 가능성이 모여 도시의 힘이 된다는 신념을 오랜 시간 변함없이 지켜 온 사람이다.
◆ 삶을 움직이는 그 날의 ‘각인’
그의 가장 오래된 기억 중 하나는, 당시에는 생소했던 유소년 선수 발굴 능력이 뛰어난 구본천 선생님과 초등학교 교단 위에서 권투 시합을 벌였던 날이다. 장난처럼 시작했지만 그 순간만큼은 온몸을 던질 만큼 진심이었다.
버티며 맞서다 눈썹 위가 찢어져 흉터가 남았고, 그 흔적은 지금도 얼굴에 남아 있지만 그는 굳이 숨기지 않는다. 그날의 통증과 함성, 몸이 먼저 반응하던 감각은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그의 안에 새겨진 각인이 되었고, 지금도 그때의 뚝심과 기질이 그의 삶을 움직이고 있다.
◆ 체육행정가의 사람을 대하는 기준
학창 시절 그는 운동장과 체육관을 오가며 씨름과 유도로 하루를 채웠고, 몸을 부딪히는 훈련 속에서 ‘버틴다’는 말의 의미를 몸으로 배웠다. 운동부 창단 선수라는 이유 때문에 공부로 평가받을 기회는 많지 않았지만, 그는 운동이야말로 삶을 배우는 교실이었다고 기억한다.
이기기 위해 준비하는 시간과 패배 후에도 다시 경기장에 나서서 오르는 용기, 그리고 승부가 결코 혼자만의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이 그를 성장시켰다. 지금 체육행정을 맡은 그는 그 시절의 경험이 사람을 대하는 기준이 되었으며, 체육은 결과 이전에 함께 훈련하겠다는 약속이고 서로의 버팀목이 되어 끝까지 버텨내는 과정이라는 믿음이 그때부터 단단히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 미래를 내다본 조언 ‘세계속의 영어’
그는 교실보다 체육관이 익숙하고 교복보다 운동복이 편한 학생이었기에, 수업보다 훈련과 대회가 우선인 날들이 많았고, 그 결과 주변에서는 그를 ‘운동만 하는 학생’으로 쉽게 단정하곤 했다.
시간이 지나 대한민국 스포츠가 세계 무대에 가까워질수록, 통역 없이 인터뷰를 하고 동료들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며 계약과 협상까지 스스로 챙기는 선수들을 보면서, 실력만으로는 넘기 어려운 경계가 분명히 존재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사람을 성장시키는 것은 재능만이 아니라, 자신이 선 곳을 넘어 더 넓은 세상을 상상하고 준비하는 태도이며, 진짜 실력은 기술이 아니라 결국 삶을 스스로 확장해 나가는 힘이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선생님은 영어 자체보다 ‘더 멀리 보는 법’, 즉 세상과 연결되는 길을 가르쳐 준 사람이었다.
◆ 책임의 리더십
그는 사회에 첫발을 내디디며 운송 사업으로 생계를 시작했고, 덤프트럭 운송사업으로 건설 현장을 오가며 토목과 건설의 흐름을 몸으로 익혔다. 현장에서 쌓인 경험은 자연스럽게 건설업으로 이어졌고, 그 배움을 바탕으로 새로운 길을 열어 회사를 세웠다.
이후 20여 년 동안 회사를 이끌며 경기의 호황과 침체를 모두 지나왔지만 책임을 내려놓지 않았고, 최근의 불황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담담한 태도로 현장을 지키며 맡은 일을 끝까지 완수하겠다는 단단한 의지와 오랫 동안 현장을 지켜온 사람만이 가진 온기, 그리고 깊은 책임감을 증명해왔다.
◆ 삶을 지탱해준 가정
그의 결혼은 담백했고 특별한 사연도 없었지만, 부족한 자신과 삶을 함께해 준 아내에 대한 고마움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깊어졌다. 그는 자녀들의 삶에 과도하게 개입하지 않고, 아이들이 스스로 선택하고 그 선택에 책임지는 과정을 존중하며 조용히 지켜보았다.
큰아들은 최민호 선수와 함께 유도선수로 치열한 시간을 보내며 자신의 한계를 끝까지 밀어붙였고, 딸은 간호사로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뒤 학문의 길로 나아가 박사학위를 취득해 현재 교수로 자리 잡았다. 그는 자녀들의 성장과 성취를 떠올리며, 부모가 해준 것이 많지 않더라도 각자가 자기 길을 찾아 끝내 걸어가 준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담담히 말했다.
◆ 한 발 더 뛰는 체육 행정
김천시체육회장인 그는 사실상 매일 체육회에 출근하며 김천 체육의 전반적인 흐름을 꼼꼼히 점검하고 쉼 없는 일정을 이어가고 있다. 비상근 회장으로 매일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만, 체육 현장과 직원들과의 긴밀한 소통을 바탕으로 업무를 지체 없이 추진하기 위해 직접 발로 뛰는 길을 택했다.
그 결과 본업에 다소 소홀해질 만큼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음에도, 그의 중심은 흔들림 없이 김천 체육에 놓여 있다. 이는 일의 연속성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과 누구보다 체육을 진지하게 대하는 태도가 그를 매일 현장으로 이끌고 있기 때문이다.
◆ 스포츠 명가 도시! 전성기는 지금부터!
체육회장은 김천 전체의 체육을 책임지는 자리라고 여기며, 체육이 엘리트 선수만의 영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는 신념을 또한 갖고 있다. 시민 모두의 삶과 맞닿아 있는 생활체육을 토대로 학교체육과 어르신 체육까지 함께 성장할 때, 비로소 도시의 건강한 체력이 만들어진다고 믿는다.
또한 제2종합스포츠타운 조성과 김천시체육회관 건립을 김천 체육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바라보며, 김천 출신 올림픽 금메달리스트들의 역사를 기념하는 공간까지 마련된다면 김천이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스포츠 명가 도시로 다시 한번 더 도약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와 바람을 품고 있다.
◆ 소통의 힘! 결과로 증명
민선 2기에서 부회장·이사·각종 위원회는 물론 읍·면·동 체육회와 회원종목단체까지 정기적인 의견 수렴 체계를 구축하고, 간담회·실무협의 등 정례 소통 채널을 운영해 주요 현안과 건의사항을 신속히 공유함으로써 현장 중심의 협력 체계를 대폭 강화했다.
또한 현장에서 확인되는 애로사항을 즉시 파악·조정하여 실행력 있는 지원이 가능하도록 했고, 그 결과 단체 간 역할과 책임이 명확해지면서 사업 추진 과정의 협업 효율과 대응 속도가 전반적으로 향상되었다.
이러한 소통을 바탕으로 12년 만에 개최한 제63회 경북도민체육대회에서 종합 3위를 달성했으며, 제27회 경북장애인체육대회와 제35회 경북도민생활체육대축전까지 경북 3대 스포츠 대회를 역대 최고 수준의 성공적인 대회라는 대회 관계자들의 평가가 뒤를 이었다.
◆ 모든 종목, 같은 무게로 존중
김천은 프로 축구와 프로 배구를 비롯해 배드민턴·농구 실업팀, 테니스와 육상 등 다양한 종목이 함께 뿌리내린 도시이며, 최한동 회장은 이 모든 종목을 규모나 인지도와 무관하게 같은 기준과 같은 무게로 바라본다.
그는 “중요하지 않은 종목은 하나도 없다”는 원칙을 바탕으로, 특정 종목의 화려함이 아니라 각 종목단체 회장과 지도자, 선수, 행정이 자기 자리에서 얼마나 성실하게 역할을 수행하느냐가 성패를 가른다고 강조한다. 또한 체육회장의 역할은 앞에서 지시하고 통제하는 자리가 아니라 뒤에서 받치고 조율하며 큰 방향을 세우는 책임의 자리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그의 관점에서 체육은 경기 결과로 끝나는 활동이 아니라 사람을 남기고 사람을 키우는 과정이며, 그렇게 성장한 사람이 다시 도시의 체력이 된다. 결국 사람을 키우는 일이 곧 도시의 체력을 키우는 일이라는 믿음 아래, 그는 오늘도 김천체육이라는 공동의 현장에서 묵묵히 책임을 실천하고 있다.
최한동 회장은 김천역도연맹 회장을 시작으로 회원종목단체회장협의회장과 경북배드민턴협회장을 거쳐 김천시체육회장의 자리에 올라 지역 체육 발전의 중심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그는 오랜 기간 체육 현장에서 쌓아온 공로를 인정받아 체육인이라면 누구나 부러워한다는 대한민국체육상 ‘진흥상’을 수상함으로써 경북은 물론 김천 체육의 위상을 한층 높였다. 아울러 현재 22개 경북시·군체육회장협의회장으로서 맡은 직무를 충실히 수행하며, 경북과 김천 체육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 꾸준히 기여하고 있다.